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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신입 쿠팡맨의 죽음이 남긴 것

신입 쿠팡맨의 죽음이 남긴 것

한전진 기자입력 : 2020.03.20 05:00:00 | 수정 : 2020.03.20 11:05:01

[쿠키뉴스] 한전진 기자 = 한 신입 쿠팡맨이 숨졌다. 입사 4주차의 40대 남성 A씨였다. 지난 12일 새벽, 경기 안산의 한 빌라 건물에서 심장이 멎었다. 새벽배송을 하던 도중이었다. 배송이 이뤄지지 않자 A씨는 회사 관리시스템에서도 사라졌다. 이후 동료가 그를 찾아 병원으로 옮겼다. 부검 결과 A씨의 사인은 심장질환이었다. 관상동맥 4분의 3이 막혀있는 상태였다.

40대 신입 쿠팡맨은 왜 목숨을 잃었나. 단순히 코로나19에 따른 물량 폭증이 원인이었을까. 쿠팡은 근로시간을 준수하며 휴게시간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고도 하는데 말이다. 뭔가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이 답은 쿠팡도 알고, 우리도 아는 불편한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한국 사람이라면 사회에서 으레 한번쯤 겪게 되는 그런 일.

A씨는 비정규직이었다. 이젠 말 조차 식상해진 단어. 그의 속사정은 모를 일이지만, 마흔의 나이 새로 직장 잡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인가. 주변의 가족, 친구, 이웃이 흔히 마주하는 일이다. A씨 역시 쿠팡에 새롭게 희망을 걸어봤을 터다. 나름 자리를 잡아볼 것이라고. 하지만 알다시피 쿠팡은 모든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다. ‘개인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추후 심사 대상에 올린다. 

‘개인의 역량’, 어쩌면 참 무서운 말이다. 사실 정규직 등 자신의 생계가 개인의 역량과 이어지는 순간, 휴게시간과 근로시간은 더 이상 무의미해지게 된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한번쯤 겪어본 일일 터다. 특히 배송과 배달 등 단순 노무 근로자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짙어진다. 대상자 중 한정 인원을 선별 채용하는 과정이라면 더더욱. 현재 쿠팡에서는 분기별 평가를 통해 쿠팡맨들을 1등급부터 9등급으로 세분화해 구별하는 레벨 시스템을 시행 중이다. 

노하우도 없는 신입 A씨가 휴식시간을 과연 제대로 사용 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물건을 지고 건물을 오르내리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것 같다. 

최소 인원, 최대 효율을 위한 쿠팡의 노무 시스템이겠지만, 현장에서는 서서히 고통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쿠팡맨 노조 기자회견에서 한 쿠팡맨은 “퇴사율이 75%에 달하고 있다”면서 “특히 1년 미만 퇴사자는 96%”라고 호소했다. 겨우 4%의 쿠팡맨이 살아남아 그중의 일부만 자리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쿠팡 측도 할 말은 있다. 신입 직원에겐 절반 정도의 물량만 담당시키고 있다는 것. 또한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와 달리, 쿠팡맨은 본사 직고용 인력으로 2년이 지나면 94%가 정규직으로 전환 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1년 미만 퇴사자가 90%를 넘어선 상황에서 쿠팡의 이런 항변은 공허한 외침이 아닐까?

또 쿠팡은 항상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그런 자사를 기존의 택배 회사와 비교한 것 역시 오히려 자신을 깎아내리는 듯한 느낌이다. 

40대 신입 쿠팡맨의 죽음은 과연 무엇을 남겼나. 단지 신기술만 혁신이 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쿠팡은 노무 시스템 전반을 한번쯤 돌아보길 바란다. 현장의 배송 노동자들은 쿠팡이 있어야 쿠팡맨도 있다고 호소했다. 오히려 물량이 늘어도 괜찮다며 많은 이용을 당부했다. 다만 쿠팡에 같이 살자고 했다.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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