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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돌’ 이세돌, 바둑계 은퇴

‘센돌’ 이세돌, 바둑계 은퇴

송금종 기자입력 : 2019.11.19 19:54:34 | 수정 : 2019.11.19 19:54:41

이세돌 9단이 19일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한국기원

‘센돌’ ‘풍운아’ 등 이세돌 9단을 가리키는 말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국민들에게 있어 그는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프로기사로 먼저 기억될 듯 싶다.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거둔 1승은 바둑 국민적 관심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바둑 위상을 또 한 번 세계에 입증한 대단한 사건이었다. 

그런 그가 바둑계를 떠난다. 이세돌 9단은 19일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하며 프로기사에서 은퇴했다. 

이세돌은 이로써 1995년 7월 제71회 입단대회에서 조한승 9단과 함께 입단한 이후 24년 4개월간의 현역 기사 생활을 마감했다.

1983년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태어난 이세돌 9단은 2003년 입신(入神·9단 별칭)에 등극했다.

현역 생활을 하면서 세계대회(18회)와 국내대회(32회) 등에서 우승을 싹쓸이 했다. 그가 받은 우승 상금은 한국기원 공식 집계로 약 100억원이다. 

2016년은 이세돌 바둑 인생의 큰 사건이 있던 해다. 이세돌은 그해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 와의 대국에서 네 번 지고 한 번 이겼다. 인류의 첫 승리로 기억될 4번째 대국에서 이세돌은 백 78수로 알파고를 무너뜨렸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이세돌 9단은 2000년 12월 천원전과 배달왕기전에서 연속 우승을 시장으로 타이틀 사냥을 시작했다. 3단 시절인 2002년 15회 후지쓰배 결승에서 유창혁 9단을 반집으로 꺾고 세계대회 최저단 우승 기록을 세웠다. 

2000년에는 76승으로 한국기원 최다승을 거두며 최우수기사상(MVP)을 획득하는 등 통산 8차례 MVP를 거머쥐었다. 이밖에 4번의 다승왕과 연승왕, 3번의 승률왕에 올랐다. 

2014년에는 친구이자 라이벌인 구리(중국) 9단과 10번기를 벌여 6승 2패로 승리했다.

바둑계 풍운아 다운 사건들도 많았다. 

이세돌 9단은 2016년 5월 프로기사회의 불합리한 제도에 동조할 수 없다며 친형 이상훈 9단과 기사회에서 탈퇴했다.

기사회 탈퇴 회원은 한국기원이 주최, 주관한 대회에 참가할 수 없고 회원 대국 수입에서 3∼15%를 공제해 적립금을 모으는 정관 조항에 반대해서다. 

이세돌 9단은 또 1999년에는 대국료도 없이 별도로 연간 10판씩 소화해야 하는 승단대회는 실력을 반영하지 않는다며 승단대회 보이콧을 벌였다.

그가 3단으로서 천원전과 후지쓰배에서 우승한 이유였다. 2000년에는 3단에 머문 상태로 32연승을 달리면서 당해 최다승·최다연승을 기록했다.

이에 한국기원은 백기를 들고 일반기전을 승단대회로 대체하고 주요대회 우승시 승단을 시켜주는 제도를 신설했다. 

2009년에는 한국바둑리그에는 불참하고 중국리그에 참여하려고 했다가 기사회와 마찰을 빚어 '휴직계'를 내고 잠적했다.

올해 3월 이세돌 9단은 커제 9단과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대국 후 은퇴를 시사하기도 했다.

한국기원이 7월 기사회 소속 기사만이 한국기원 주최·주관·협력·후원 기전에 출전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정관을 의결하면서 이세돌 9단은 대회 참가 기회를 잃었다.

이세돌 9단 은퇴로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는 모두 366명(남자 299명·여자 67명)이 됐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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