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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다문화가 차별과 동의어일 줄이야

다문화가 차별과 동의어일 줄이야

김양균 기자입력 : 2019.05.03 00:01:00 | 수정 : 2019.05.02 17:59:39

‘열린’ 대한민국은 꿈 같은 이야기일까? 

수년 전 법무부로부터 난민 인정을 기다리던 이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은 자국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아 우리나라로 피신해 있었다. 난민 인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더러는 본국으로 돌려보내졌다.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생존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짐작한다. 보도하자 역대급으로 욕을 먹었다. ‘난민 데리고 살아라’는 메일도 여럿 받았다. 비극적이었다. 

피부색에 따라 대우는 어쩜 그리 다른지. ‘아프리카는 하나의 아프리카가 아니고 56개의 국가로 이뤄진 대륙이다’라고 기사를 쓰자, ‘깜둥이 빨아준다’는 댓글과 문자메시지, 이메일을 받았다. 비관적이었다. 

‘다문화’란 용어가 흡사 혐오와 차별의 동의어마냥 사용되는 것 같다. 표현 자체 바꾸자는 움직임도 있지만, 핵심은 용어가 아니다. 인식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 더 정확히는 정책의 문제다. 사실 역대 정권 초기마다 다문화 정책을 펴려는 제스처가 되풀이되곤 했다. 정치권은 더 노골적이었다. 다문화 정책을 위한 인사 영입 등이 대표적이었다. 

항상 문제는 행위보다 본질에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다문화 정책이 자국민 중심의, 사실상의 ‘동화정책’은 아닌지 의심한다. 정부 당국자들은 항상 새로운 이름의 대책과 정책과 시범사업을 편다. 당장 급격한 인구 감소를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닫힌’ 대한민국을 ‘열게’ 만드는 한 방의 획기적인 정책 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알고 그들도 안다. 다분히 우호 여론의 확보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말이다.  

우리 사회가 ‘다문화’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사회적 논의의 장에 다문화로 대변되는 이주민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인종·문화적 다양성 등의 어젠다가 제대로 올라선 적이나 있었던가. 구타 끝에 추락사한 다문화가정 자녀의 사연에 반짝 분노했다. 그때뿐이었다. 

‘다문화’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외국인들이 우리 세금을 좀먹고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극우적 분위기가 팽배한 것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건가.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말을 못한다고,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부모와 그들의 자녀를 조롱하고 돌을 던질 이유가 무엇인가. 누가 우리의 손에 그런 돌멩이를 쥐어주었나. 우리사회의 폐쇄성이나 낮은 인권 감수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를 조장해 세를 부풀려 한 표라도 더 받으려는 정치권의 졸렬한 술수는 또 어떠한가. 

5월이다. 가족의 달이다. 안아보자. 나, 너, 우리 이렇게 구분 짓지 말고 한 뼘만 더 크게 안아보자.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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