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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기자의 트루라이프] “선의(船醫)를 꿈꾸던 소년, 선의(宣醫)로 항해 중” 고대 구로병원 건강검진센터장 김한겸 교수

곽경근 기자입력 : 2019.02.11 05:00:00 | 수정 : 2019.02.11 10:35:41

-병리과 교수, 의사검객, 국내 미라연구 권위자, 현미경 사진가, 글로벌 의료 봉사가 등 의료계 팔방미인-

6시간 시차 적응이 제일 애매합니다.”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 다음 날인 130일 오전, 김한겸 교수(64·고려대 구로병원 건강검진센터장)를 그의 집무실에 만났다.

눈은 푸석푸석하고 입술은 말라 피곤해보였지만 김 교수의 목소리는 맑고 행동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고생 많으셨다고 하자, 아프리카 보름 다녀온 사이에 옷이 많이 커졌다는 김 교수의 대답에 봉사활동이 녹록치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2016년부터 매년 1월 대한세포병리학회 회원인 의대교수들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를 방문하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달 14일 에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의 봉사활동 현장을 돌아보고 아프리카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로 이동했다. 김 교수는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 운영위원장이다.

이후 김 교수는 대한세포병리학회(회장 홍순원 연세대 의대 교수·이하 학회)가 주관하는 마다가스카르 병리과 의사들을 위한 이론 및 실무교육인 ‘2019년 바오밥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학회는 마다가스카르 국립의대병원에서 이론교육과 현미경실습 및 염색술기 교육을 실시하고 현미경 10대를 비롯한 병리검사 기자재와 최신 교육자료를 제공하고 돌아왔다. 또한 학회는 매년 23명의 아프리카 의사를 한국으로 초청해 연수를 시키고 있다.

마다가스카르 현지 신문이 한국에서 온 의료진의 봉사 활동을 취재해 보도했다.

김 교수를 비롯한 병리 전문 의료진의 목표는 아프리카 의사들이 스스로 전 국민 조기암진단이 가능하도록 하는데 있다.

“1980년대 초 세계보건기구(WHO)의 도움으로 스칸디나비아와 일본의 병리교수들이 한국의 병리의사들에게 5년간 조기암 검진기법을 전수했다. 그 결과 당시 한국인 여성에서 제일 많았던 자궁경부암이 현재는 6위로 내려앉았고, 자궁경부암을 조기진단 함으로써 사망률도 크게 감소하였다.”면서 이를 되갚기 위해 2007년부터 '몽골프로젝트'10년 넘게 진행하였고 이후 아프리카로 대상국을 바꾸어 진행 중이라고 김 교수는 밝혔다. 의료진의 봉사활동 경비는 전액 자비 부담이다.

마다가스카르 국립의과대학에서 이론 및 실무교육을 마치고 현지의료진,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글로벌 의료봉사가인 김 교수는 2005년 징기스칸 일족의 무덤에 대한 고고학적 탐사를 진행했던 것이 인연이 돼 해외의료봉사에 나서게 됐다. 당시 몽골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목격한 그는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이 된 2007년부터 매해 몽골을 방문해 현지 의사들을 교육하고 몽골 여성에게 가장 많은 자궁경부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도록 이론과 실습을 겸비한 교육에 집중했다. 10년 동안 꾸준히 몽골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암을 진단할 수 있는 의사가 소수에 불과했던 몽골에 이제는 100명이 넘는 의사들이 현미경을 통해 환자들의 암을 진단할 수 있게 됐다

고려대 사회봉사단 창단에도 일조한 김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소외된 이웃을 찾아 연탄배달과 무료급식, 농촌 일손 돕기 등 나눔 활동을 펼쳤다. 네팔, 캄보디아, 러시아 등 해외 각지에서에서도 활발하게 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글로벌 나눔문화 확산에도 힘을 쏟았다.

-김한겸 교수는-

6,25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1955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태어났다. 제재소를 운영했던 할아버지 덕에 그는 동네에서는 가장 큰 이층집에 살았다. 어린 시절 아직 개발이 덜 된 집 앞의 넓은 들판에서 뛰놀며 감수성을 키웠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경춘선 기차를 보면서 미지의 세계를 동경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어머니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 사대문에 인접한 돈암동으로 이사했다. 경동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급의 환경미화를 책임질 정도로 미술적 감각도 뛰어났다. 친구들은 김 교수가 미대에 진학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호기심 많고 진취적 성격의 김 교수는 어린 시절 미국 드라마 도망자의 주인공 닥터 킴블이 롤모델이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며 넓은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니는 것이 소년 김한겸의 꿈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직업이 배에서 선원들의 진료를 책임지는 船醫였다. 출발은 병리과 의사였지만 글로벌 나눔전도사로 어느 정도 자신의 꿈을 이룬 셈이다.

-劍醫一體(검의일체), 의사 검객 김한겸-

바쁜 의사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7단까지 따셨어요.” 기자의 질문에 죽도(竹刀)로 죽도록 했습니다.” 명쾌한 답변이 바로 돌아왔다.

병리학자인 김 교수의 또 다른 애칭은 의사 검객이다. 무술만 평생 수련한 사람들도 따기 힘든 검도 7단에다가 무술관 관장 출신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죽도를 잡았으니 어느새 검도인으로서도 반평생을 산 셈이다. 검도의 고수가 되기까지 아킬레스건 끊기고 죽도에 맞아 고막이 터지기도 했지만 초년병 의사 시절을 빼고는 칼을 놓아본 적이 없다

러시아검도연맹 초청 검도 강의 후 단체 사진.

김 교수는 1977년 의대에서는 처음으로 고대의대 검도회를 만들어 40년 넘게 무적의 검도회로 자리 잡게 했다. 2000년에는 한국의사검도회와 전국의대생검도대회도 그가 만들고 개최했다. 현재 전국 18개 의과대학에서 검도회가 운영되고 있으며 회원만 천명이 넘는다. 한때 고대구로병원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도장을 만들어 운영했고 검도 3단까지 키워냈다.

김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일본 오사카대학 의학부 검도팀과 교류 했다. 한국의사검도회는 오는 518일에서 19일 양일간 일본의사검도연맹이 주최하는 검도대회에 참여한다. 김 교수도 출전해 일본의 최고수 의사검객과 자웅을 겨룰 예정이다. 또한 김 교수는 한·일 의사검도대회도 개최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의사검도대회로 키워 갈 포부도 밝혔다.

검도 강의 후 강의료를 사양하자 러시아 현지 사범이 만들어준 머그 컵

김 교수는 의료와 검도의 공통점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며 검도는 전신운동이기 때문에 근력이 강해지고 심혈관 호흡계통이 좋아진다. 나이에 상관없이 심신에 좋은 운동이라고 말했다. 또한 검도는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나는 운동이다. 선후배가 함께 모여서 땀을 흘리다보면 자연스럽게 선후배 간 공경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실습실에 보관되어 있는 미라를 살펴보고 있다.

-‘미라아직은 내 품에, 기자들에게는 특종 의사로 통해-

세계 유일의 임신 중 사망한 모자(母子) 미라도 제가 퇴임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면서 이집트 미라는 국내 전시를 못해 안달을 하면서 정작 우리가 정성껏 보존하고 연구해야 할 국내 미라들은 등한시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미라에도 사대주의가 적용되는 것 같다.”며 미라 이야기가 나오자 김 교수의 목소리 톤이 다소 높아졌다.

그는 국내 최고의 미라 연구자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20029월 경기도 파주시 파평리 윤 씨 종중묘지에서 발견된 파평 윤씨 미라 부검을 진두지휘했다. 윤씨 모자 미라는 20대 중반의 여인이 출산 중 숨진 미라로 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당시에는 미라 박물관을 만들어 보전·전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 역시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실의 불청객 신세가 됐다.

2016년 의정부에서 발견한 미라에서는 폐의 기생충을 찾아냈다. 미라의 폐에서 기생충이 발견된 사례도 처음이다. 피를 멈추게하는 한약제인 아기부들을 사용한 근거도 밝히는 등 미라를 연구해서 특종기사도 기자들에게 많이 제공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지금도 미라가 발견되면 그에게 요청이 온다. “장기제거하고 방부 처리한 외국 미라와 달리 한국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미라들은 장기는 물론 피부도 누르면 튀어나올 정도로 연구가치가 높은 미라라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 미라는 현행법으로는 문화재가 아니라 오래된 시신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 발견되는 미라는 거의 조선시대 미라입니다. 미라는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면서 “식생활, 병력 등 등,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미라가 입고 있던 옷이나 부장품 뿐”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를 비롯한 미라 전문가들은 문화체육관광부나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등 국가가 나서서 체계적으로 미라의 발굴 및 보존· 관리 대책 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아직까지도 정부대책은 미온적이다. 고병리학계에선 벌써 그의 정년 후 미라 연구 및 보존에 대해 걱정이 크다.

김 교수는 “2년 후 제가 정년을 하면 우리 병원에서 모시고 있는 미라 8구도 화장(火葬)될 운명에 놓여 있다.”면서 지금 마음으로는 차라리 화장을 해드리는게 차가운 냉동실에서 십수 년째 안치되어 있는 미라들을 위하는 길인지도 모르겠다면서 아쉬운 속내를 드러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부가 앞장서 세계적인 가치가 있다며 중요성을 인정한 파평 윤씨 모자미라조차도 화장장으로 향할 것이다.

김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환자의 암 조직을 살펴보고 있다.그는 “병리학자의 눈으로 보면 단순히 암세포나 바이러스, 세균이 퍼져 있는 모습이지만 인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살펴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고 말한다.

 -현미경 아트 작가 겸 풍경 사진가 김한겸-

다음 달 우정사업본부에서 발행하는 우표에 제 현미경 작품사진이 들어갑니다. 우표 전지 배경도 제 사진이구요, 기자님도 우표에 자신의 작품이 들어간 적이 있으신가요?” 미라 이야기에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김 교수는 사진에 관련된 질문을 던지자 갑자기 표정이 밝아졌다.

김 교수는 현미경 아트작가이자 풍경사진가이다. 현미경을 통해 인체 조직세포를 관찰하고 병을 진단하는 그의 본업이지만 연구실에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세(微細)’ 세상을 마음껏 감상하는 것도 그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그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작품을 찾아내고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덧씌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킨다.

벌새 (a hummingbird) : 빨간 벌새가 꽃에서 꿀을 빨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본래 기관지에 발생한 편평세포암을 세포학적 검사로 진단하다 발견했다.

김 교수는 육군 과학수사연구소 군의관 시절 전국에서 발생한 사건사고 현장을 다녔다. 그는 보다 정확한 사고원인 파악과 부검을 위해서 좋은 카메라와 사진 기술 습득이 중요했다. 다행히 함께 조사를 다녔던 담당관이 사진작가여서 그에게 촬영법도 많이 배우고 현장을 오고가는 길에 풍경사진도 많이 찍었다고 말한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전 네거필름과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한 사진 만해도 만 컷이 넘는다고 했다.

천마 : 천마는 달리고싶다! 대장 용종을 관찰하는데 갑자기 달리는 말이 보였다. 그냥 말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천마이다. 경주의 천마총에서 발굴된 천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늘 사진에 관심이 많던 그에게 1993년 어느 날, 재미교포 병리과 교수의 피부암 특강이 끝날 무렵 마지막 슬라이드 사진 속 암세포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김 교수는 전율을 느꼈다. “세포가 웃고 있네! 나도 저런 사진 한번 찍어봐야겠다고 결심이 선 김 교수는 영국에 연수를 다녀온 직후인 1995년 당시 거금 이천만원을 주고 현미경을 구입했다. 김 교수는 환자의 세포를 꼼꼼하고 정확하게 살피며 병의 유무, 병명, 원인균 등을 찾아내는 일이 우선이지만 틈틈이 조직 속에서 특이한 형태의 사진 형상이 나타나면 하나 둘씩 저장해 나갔다.

솔롱고스 (Solongos): 무지개나라 이것은 본래 수술로 절개한 부위를 꿰맸던 봉합사이다. 현미경 속에서 솔롱고스가 무더기로 보였다. 어릴 적 명절마다 즐겨 먹던 둥글넙적한 무지개사탕처럼 보이기도 했다. 몽골에서는 한국사람들을 '솔롱고스'라고 부른다. 바이칼호수에 무지개가 많이 뜨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고, 색동옷을 즐겨 입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출근해서 현미경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행복하다는 그는 젊어서는 단지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느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살았지만 현미경 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한 후로는 일상이 너무 즐겁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현미경에 눈을 대고 작은 유리판 위에 붙어있는 조직이나 점액질 검사를 하다보면 어느 날은 노래 부르는 사람의 얼굴과 길쭉한 모양이 된 석면에서 무사의 검이 나타나고 어떤 날은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또 어느 날은 여인의 우아한 춤사위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20여 년간 미세한 조직과 세포 속에서 구상과 비구상의 무수한 작품들을 찾아냈다.

흰수염 할아버지(grandpa) : 무릎수술을 통해 제거된 연부조직이다. 정상이라 병리학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조직이지만 다른 눈으로 관찰하니 흰수염 할아버지가 보인다.

김 교수의 작품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3년 충청북도가 주관한 바이오사진전에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을 받으면서부터다. 무릎관절 연부조직 중 일부를 100배 확대해 얻은 흰 수염 할아버지라는 작품이다. 2016년에는 그간의 세포 탐미와 기록이 담긴 개인전 ‘Nomad in a small world을 열었다. 그동안 일반 사진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김 교수의 사진전은 관람객의 호기심과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전시회 수익금은 전액 호스피스재단에 기부했다.

현미경 아트 사진 뿐 아니라 풍경사진가이기도 한 그는 아프리카 사진전과 몽골 사진전을 안양 샘병원과 고대 구로병원에서 개최하고 일부 작품은 병원에 무상 기증했다. 학교 측에서 2020년 달력에 들어갈 사진을 부탁해 일이 한 가지 더 늘었단다.

북극 다산과학기지 방문 시 김 교수가 촬영한 사진

-先醫 김한겸, 새로운 항해를 꿈꾸다-

국내 의료계 대표적 팔방미인인 그가 학생처장 시절 조직한 고대사회봉사단은 10년 동안 900여명의 봉사단원을 배출했다. 병리과 의사로서는 과학수사연구소 법의과장, 대한병리학회 이사장,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위원장, 대한병리학회회장, 대한극지의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한국병리학회 이사장 시절에서 모든 병원에서 의무적으로 특수 환기장치를 통해 포르말린과 화학약품 냄새를 제거하는 작업을 완수해 환자 및 의료진의 건강보호에도 앞장섰다. 또한 국내 최초로 암 조직 등 인체 조직을 보관했다가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바이오뱅크를 설립하고 모든 대학과 병원에 설치하도록 했다.

의사, 교수, 소장, 이사장, 회장, 원장, 처장, 관장, 검객, 사범, 단장, 사진작가, 나눔 전도사 등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며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그는 현대판 노마드(Nomad·유목민) 임이 분명하다.

고대 구로병원 병리과 이은정 교수는 풍부한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연구 하시는 모습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또한 봉사에도 시간과 열정을 아끼지 않으셔서 우리 학교와 병원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면서 항상 자랑스러운 선배이자 인생의 멘토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제 2인생을 멋지게 펼치려면 체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주특기인 검도 외에도 수시로 목동 집에서 병원까지 4Km가 넘는 거리를 운동 삼아 출퇴근한다.

그는 이제 의사와 교수, 협회장, 검객의사, 사진가, 봉사가로서의 긴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항 중이다. 정년이 정확히 2년 남았다. 그는 벌써부터 글로벌 봉사자답게 두 번째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퇴임 후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인생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마다가스카르에 의료센터를 세울지, 말라위 암센터에서 일하게 될지 아프리카 의료의 교두보 역할을 맏고 있는 에티오피아 명성의료원의 교수직을 맏을 지 아니면 이 모두를 다 해내야할지는 아직 미정이다. 분명한건 아프리카 전역에 병리의사를 양성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소임이다. 안과의사인 아내와 경찰관 아들 부부, 대학 강사인 딸과 사위 그리고 동료 의료진은 김 선장의 든든한 일등 항해사이자 자랑스런 선원들이다.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 사진=왕고섶 사진가. 김한겸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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